수능 직후, 나는 고1 내신 문제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어느 해에는 내가 만든 문제들이 학생들에게 “딱 맞는 난이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해에는 “너무 어렵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두 해에 문제를 만드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이것은 내 실력의 차이였을까? 아니면 무작위성이 만들어낸 차이였을까?
레너드 믈로디노프(Leonard Mlodinow)의 저서 드렁커드의 워크(The Drunkard’s Walk)를 읽고 나서, 나는 이 질문에 더 겸손한 답을 갖게 됐다.[1]
드렁커드의 워크란 무엇인가
드렁커드의 워크(취한 사람의 걸음)는 무작위 행보(Random Walk)를 설명하는 비유다. 술에 취한 사람이 걷는다. 각 걸음의 방향은 무작위다. 오른쪽, 왼쪽, 앞, 뒤를 예측할 수 없다. 이 무작위 행보가 어디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믈로디노프는 우리의 삶에서 많은 결과들이 이 무작위 행보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성공과 실패의 상당 부분이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무작위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작위성을 과소평가하는 이유
우리는 무작위성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한다. 다니엘 카네만은 이것을 결과 편향(Outcome Bias)이라고 부른다.[2]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것이 좋은 결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쁜 결과가 나오면 나쁜 결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작위성의 역할은 무시된다.
나심 탈레브는 이 문제를 더 깊이 다룬다.[3] 그는 금융 시장에서 성공한 트레이더들의 상당수가 능력이 아니라 운 덕분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1,000명이 동전 던지기를 10번 한다면, 통계적으로 10번 모두 앞면이 나오는 사람이 생긴다. 그 사람을 “동전 던지기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금융 시장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교사 생활에서의 무작위성 인식
나는 교사로서 다음과 같은 무작위성을 경험해 왔다:
- 학급 구성의 무작위성: 어떤 해에는 동기부여가 높은 학생들이 많이 배정됐다. 어떤 해에는 어려운 상황의 학생들이 많았다. 이것은 내 통제 밖의 일이다.
- 시험 문항의 무작위성: 내가 가르친 내용이 시험에 얼마나 나오느냐는 부분적으로 무작위다.
- 외부 환경의 무작위성: 감염병, 사회 이슈, 날씨 등이 수업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을 인식하고 나서, 나는 결과에 대해 더 겸손해졌다. 어떤 해에 “좋은 교사”라는 평가를 받아도, 그것이 전적으로 내 실력 때문이 아닐 수 있다. 반대로 어떤 해에 힘든 평가를 받아도, 그것이 전적으로 내 탓이 아닐 수 있다.
무작위성을 인식하면 어떻게 달라지는가
무작위성을 인식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맞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필립 테틀록의 연구에서 최고 예측가들은 무작위성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4] 그들은 단기 결과에 흔들리지 않았다. 좋은 결과가 나와도 과신하지 않고, 나쁜 결과가 나와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장기적인 패턴을 봤다.
실용적인 함의들:
- 단기 결과로 판단하지 마라: 한두 번의 결과는 무작위성의 영향이 크다. 충분한 반복을 거친 결과를 봐야 한다.
- 과정을 평가하라: 결과가 좋았어도 과정이 나빴다면 앞으로 좋은 결과가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 다양성을 유지하라: 무작위성이 강한 환경에서는 하나의 전략에 올인하는 것이 위험하다. 분산이 안전하다.
엘리에저 유드코프스키는 무작위성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인식론적 겸손과 연결된다고 말한다.[5] “내가 옳은 이유”를 생각할 때, “하지만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것이다.
오늘 당신의 최근 성공을 하나 떠올려라. 그 성공에서 무작위성이 기여한 부분은 얼마나 될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당신을 더 현명한 사람으로 만든다.
참고문헌
- Mlodinow, L. (2008). The Drunkard’s Walk: How Randomness Rules Our Lives. Pantheon Books.
- Kahneman, D. (2011). Thinking, Fast and Slow. Farrar, Straus and Giroux.
- Taleb, N. N. (2001). Fooled by Randomness. Texere.
- Tetlock, P., & Gardner, D. (2015). Superforecasting. Crown Publishers.
- Yudkowsky, E. (2008). Rationality: From AI to Zombies. MIRI.